보이콧 뜻 완벽정리

같이 알아두면 좋은 정보

장사원 : 협력업체에서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일수 없다고 하네요.

이대리 : 우리가 갑인데 그냥 밀어붙여야지 별수 있겠어

김과장 : 이대리 말이 맞아.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나가야 돼.

오차장 : 그래도 더 좀 대화를 나눠봐, 그러다 보이콧이라도 하는 날에 우리도 득이 없어

* 뉴욕의 동물애호가들이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난하며 제품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 명분없는 '보이콧'은 자멸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보이콧 뜻과 의미 : 거부운동. 공동으로 배척하는 일을 뜻한다.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등 모든 분야에서 적용된다. 보이콧은 통상 조직적, 집단적으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말한다. 노동운동에서 많이 쓰이고, 국제관계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어떤 나라의 정책 또는 행동에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한 특정 회사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뜻하기도 한다

보이콧 뜻과 유래 : 영국 영지 관리인이었던 보이콧(Charles Cunningham Boycott, 1832~1897)이 1880년 소작인들을 추방하려다가 단합한 전체 소작인들의 항으로 물러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영국 육군 대위 출신인 보이콧은 아일랜드 백작의 재산 관리인이었다. 1879년 9월, 그는 소작료 25퍼센트를 깍아달라는 아일랜드 토지연맹의 요구를 거부했다. 아일랜드 토지연맹은 찰스 스튜어트 파넬의 지도 아래 높은 소작료와 강제퇴거에 저항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 보이콧은 소작료를 납부하지 않은 소작인들에게 퇴거 영장을 발부했다. 그러자 파넬 등의 지도를 받은 소작인들은 비폭력 저항행동에 나섰다. 그의 집에서 일하던 하인과 하녀가 철수했고 보이콧의 자족에게 생필품을 팔지 않았다. 우편배달도 거부했다, 보이콧은 추수가 어렵게 되자 자원봉사대와 군인을 동원해 가까스로 수확을 마쳐야 했다. 이후 보이콧은 철저하게 고립됐다. 이제 자신이 마을을 떠나야 할 지경에 처했다. 이로부터 보이콧은 불매, 배척, 제재, 절교를 뜻하는 용어가 됐다.

오늘은 보이콧 뜻과 유래 의미를 알아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얼마전에 일어났던 노 재팬 운동 다들 기억하시나요? 이를 통해서 모 일본 의류 브랜드는

한국에서 약 20% 가량의 매출 하락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우리는 보이콧이라고

부르는데, 보이콧 뜻에 대한 자세한

얘기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업 혹은 국가에서 어떤 집단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행위를 했을 때

이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반항의 의미로

조직적으로 벌이는 불매 운동을 의미합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소비 활동을

하지 않는 불매 운동을 위주로 진행이 되는데요,

냉전 시대 러·미간의 관계가 안좋았을 때,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국가는

러시아에서 개최된 모스크바 올림픽 참가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그 직후 1984년에는 공교롭게도

올림픽 개최국이 미국이었는데요,

이전 올림픽 불참 선언에 반대하는 것인지

혹은 그들만의 의사표현인지 이 대회에서는

공산주의 국가들이 올림픽 보이콧을 선언하며

연이어 불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보이콧은 특정 집단의 신념에 따라

조직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정치적인

활동입니다.

이런 보이콧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산업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본격적으로

아일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확대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인이

소유하고 있던 땅을 영국인에게 넘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인의 대부분은 소작농으로

바뀌었고 전체 토지의 80%가 넘는 땅을

20%의 사람들이 소유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기후 역시

작물을 키우기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기에

가장 값싸기 구할 수 있었던 구황작물인

감자가 주된 식량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845년 감자 역병이 돌며

아일랜드 대기근이 시작됩니다.

그러던 중 아일랜드의 북동부 지역의

지배인으로 찰스 커닝햄 보이콧이라는

사람이 부임하게 됩니다.

기근이 심해지자 농사를 지어서 소작료를

지불하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지자

소작료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합니다.

이에 분노한 사람들은 보이콧에게

어떠한 물건도 팔지 않았고,

그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지도 않았으며

그를 철저하게 고립시켰습니다.

결국 영국의 군대가 와서 소작료를

징수했으며, 그는 그 해 겨울 아일랜드를

떠났습니다.

보이콧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한 개인의 주장에 따라서

집단적인 보이콧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면

몽고 메리 버스 사건이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은 극심한 인종차별이

전국가적으로 팽배하게 퍼져있었습니다.

특히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인종분리정책이 펼쳐지고 있었고,

몽고메리 버스의 경우 앞의 10석은

백인이 앉을 수 있었고,

뒤의 10석은 흑인이 앉을 수 있었으며,

가운데 16석은 아무나 앉을 수 있었지만

버스에 빈 좌석이 없으면 흑인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몽고 메리 버스 사건 당시

흑인 여성인 로자 파크스는 가운데 좌석에

앉아있었습니다.

한산했던 버스는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이 올라타서 이내 만석이 되었고

운전사는 중간 좌석에 앉아있던 흑인들에게

자리를 비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체포되었고

이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중심으로

흑인에게 버스를 이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보이콧으로 번졌습니다.

이 당시 버스의 주요 이용객은 흑인이었고,

때문에 이들의 보이콧은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버스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기도 했으며,

택시 기사들은 흑인 승객이 탑승했을 때는

버스비 가격인 10센트만 받고 목적지까지

태워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인종 차별에 비판적인

백인 주부 들이 흑인 하인들을 태워주는

일명 카풀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버스 처럼 일정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공동 수송차가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전거는 물론이고 노새나

마차까지도 이용이 되며

꾸준히 보이콧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1년동안 몽고 메리의

버스 회사는 엄청난 손해를 봤고

연방지방법원과 대법원은

이러한 인종 분리가 인종 차별과 맞닿아 있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보이콧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은

하지 말아야할 것의 목록을 작성하기보다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비폭력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인

보이콧 뜻과 유래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유익한 시간이었기를 바라며

포스팅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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